어제 용와대 안마당에 떨어진, 너무도 찰지게 김건희를 패는 공감 100% 삐라를 보면서 -사실 적시가 너무 강했는지 언론에는 다 모자이크 처리되서 나옴. ㅄ들. 아직도 박정희 시대인줄 아는지... - 갑자기 떠오른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삐라는 어린 국딩이들에겐 소소한 복권 당첨과 동일한 행운이었다. 주워서 파출소나 교무실에 가져가면 폭풍 칭찬과 함께 공책 (동네에 따라선 연필 줬다는 증언도 있음)을 받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삐라는 당시 잠실까지는 잘 오지 않아서 멀리 다른 학교나 다른 동네 친구들만의 경험담이었기에 철없는 국딩은 언젠가는 나도 삐라를 주워서 파출소 가져가 공책을 받아야겠다는 참으로 하찮은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마도 4~5학년 즈음으로 기억되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삐라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 떨어졌다.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을 정도의 노다지판이었음. 우리 대부분에겐 모두들 말로만 듣던 전설의 아이템 삐라를 열심히 주워 모아서 교무실이며 파출소로 가져갔지만 너무 많다보니 도저히 포상이 감당이 안 되었는지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열심히 주운 삐라만 챙기고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다들 그런가보다 넘어갔다.
그리고 한두해 뒤던가 딱 한번 더 길 가다가 삐라를 봤는데 아무 포상이 없었던 경험을 학습한 어린이(=나)는 무시하고 갈 길을 갔었던 후일담.
어른이 되어 지금 온 동네에 삐라 천지였던 그날을 떠올려보면 당시 관련자들이 얼마나 갈굼 당했을지 그림이 그려지면서 안 됐다는 생각이 듦. 바람과 모든 조건이 맞아서 안착한 거겠지만 그걸 제때 막지 못한 관계자들은 그 어마어마한 삐라를 보면서 등골이 오싹했을 것 같다.
북한의 똥풍선, 삐라 등등에 게거품 무는 용산과 2찍을 보면서 쟤들은 북한이 저 풍선에 폭탄이나 세균 안 날려 보낸 건지, 못 날려 보낸 건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과연 단 한번이라도 하는 건지 정말 진지하게 궁금함. 용와대가 옆집에 아니면 저 알찬 사실 적시에 응원을 보내겠으나 다음 풍선에 뭐가 달려있느냐에 따라 목숨까지 왔다갔다하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음.
빨리 윤산군 부부를 치워 이 또한 21세기에 경험한 삐라의 추억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