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오르세.
이곳은 찾아가긴 쉬운데 그 전철을 통해 빠져나가긴 참 묘하게 어렵다.
나도 헤매고 있는데 나한테 길을 묻는 프랑스 여자는 또 무슨 심산인지. ^^;;;;;
달력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봐서 사실 제일 재밌긴 했다.
일정이 짧다면 루브르보다는 오르세를 택하는게 나은 것 같다.
무슨 역을 리모델링 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남. 겉으로 보기엔 별반 넓어보이지도 않지만 들어가면 꽤나 넓다. 시계탑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레스토랑이 기억이 나는데 먹느라 정작 사진은 못찍었음. ㅎㅎ;
1층 로비. 공간 활용을 참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음. 이날도 컨디션은 꽝. 그래도 본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악을 쓰고 다녔다.
3층에서인가? 발견한 이다 루빈시타인의 사진. 20세기 초반 파리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장 매혹적인 발레리나. 인상파들과 별로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그녀의 사진이 여기에 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발견한 순간 마냥 반가워서 카메라를 들이댔음. 이 사진을 보면 가장 완벽한 몸매라는 찬사가 과한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됨. 이런 신체적 조건과 인기에 비해 무용수로서 재능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의 불행이겠지. 그러나 세헤라자데의 전설과 라벨의 볼레로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만 해도 의미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군가의 부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_-;;; 이름값보다는 예뻐서 찍었다. 서양을 무대로 한 로설의 주인공 같은 미모. 초상화는 실물보다 예쁘게 그리는 게 유행이었다던데... 실물이 이것보다 더 못할까? 그랬으면 좋겠음. ㅎㅎ;
밀레의 유명한 그림들. 달력 그림을 실제로 보니 내가 정말로 파리에 왔구나 실감. ㅎㅎ
마네의 올랭피아. 그때는 그냥 올랭피아라는 것에 혹해서 찍었는데 최근에 읽은 책 덕분에 그림이 달리 보인다. 오르세에 한번 더 가줄까? 고민...
고갱의 그림들. 솔직히 고갱 컬렉션은 오르세보다 보스턴 뮤지엄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한데... 그것도 오래된 기억이라 보장은 못함. 고갱은 확신하지 못해도 인상파 컬렉션은 파리를 제외하고는 보스턴 뮤지엄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수요일은 무료니까 보스턴 갈 사람은 꼭 들러보면 좋을듯. 샛길로 샜구나. ㅎㅎ
누구 그림인지 알았는데... 누구더라?
르느와르의 그림. 역시나 내 방 달력에 있던 그림이라 무척 익숙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내 달력 사이즈보다 작아서 조금 놀랐음. ^^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그림들이 작아졌다고 하는 얘기를 말만 듣다가 이 그림을 보니 실감했음.
고갱과 싸운 고흐가 자기 귀를 잘라 창녀에게 보내고 그린 자화상이라는데... 좀 성깔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긴 하다. 크지 않은 그림임에도 붓터치가 착시 효과를 일으킬 정도로 강렬했던 인상만 남아 있음.
이 방을 그린 그림이 여러장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것. 많은 설명과 해석을 읽고 들었지만 그래도 특별히 강한 인상은 갖지 않았던 기억이 남. 이번에 가서 보면 또 다를까? 그런데 오르세에 갈 시간이 될지... 근교 고성 투어를 안가면 오르세에 들르고 고성 투어를 가면 포기.
고흐의 그림들이다. 이 그림은 미술책에도 있어서 시험에도 나왔던 기억이 남. 그런데... 시험에 나왔던 기억은 나는데 정작 중요한 그 답은 생각이 안 남. ㅋㅋ
다음날 로댕 미술관.
이날 본래 계획은 오전엔 로댕 갤러리, 오후에는 들라크루와 갤러리에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정신력으로 버티던 컨디션이 드디어 바닥에 도달한 고로 만사 포기하고 로댕 갤러리에서 호텔로 돌아가 내리 잤다.
아까운 내 반나절. ㅠ.ㅠ
로댕이 살던 집을 죽고 나서 미술관으로 꾸몄다는데 담장의 길이만 해도 엄청나다. 입구를 찾아 헤매며 찍은 사진. ^^
로댕 갤러리 외경과 저 바깥에 걸린 금색 둥근 지붕은... 샤이오 궁 아니면 앙발리드 군사 박물관인듯. 어느 것인지는 정확히 모름.
정원에 있는 나무. 왜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무의 위치와 각도가 내가 좋아하던 그림과 닮았던 것 때문이 아닐까 지금 그냥 지레짐작.
정원 끝에 있는 야외 극장에서 바라본 저택 정면. 집이 정말로 으리으리. 저런 집에서 살았던 걸 보면 로댕이 정말로 성공한 예술가이긴 한 모양이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정도면 예술도 할만 하지.... 라는 생각을 피카소와 로댕 미술관에서 했음.
정원에 있던 조각상 중 하나. 유명한 칼레 시민 6명으로 기억이 됨. 원본인지 복제본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원본이라고 믿고 싶음.
천국의 문. ^^ 역시 정원에 있었다. 정원의 조각들만으로도 호화스런 눈요기거리임. 정원만 볼 수 있는 티켓도 따로 판다고 한다. 그건 싸다고 함. 그러나 역시 안에 액기스가 모여있음.
로댕 미술관 안에서 찍은 사진들~
하나는 로댕, 하나는 까미유 끌로델의 키스라는데 어느 게 어느 건지 모르겠음.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아니 좀 더 냉정히 얘기하면 성별을 잘못 갖고 태어나 스러진 천재에 대한 씁쓸한 느낌으로 작품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펄벅의 자랑스러운 여인이란 소설을 떠올렸다. 그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펄벅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끌로델을 연상시키는 -물리적인 배경은 엄청 다르지만 재능과 정서적 부분에서 닮은 점이 많다- 여주인공을 행복하게 살려낸 것이 아닐까.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 펄벅이 까미유 끌로델이란 존재를 알았는지 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일단 끌로델이 세상에 다시 빛을 보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니... 아니라고 해도 여하튼 끌로델과 펄벅의 소설... 내가 볼 때는 재미있는 우연이다.
역시 까미유 끌로델이 모델이었다는 것 같은데... 확실치 않음. 재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정말 거장들만의 특권인 것 같다.
니진스키를 모델로 만든 일종의 스케치라고 해야하나... 본격적인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주물럭거려놓은 습작들. 니진스키가 파리에 화려하게 등장했을 때 로댕 역시 그에게 매혹된다. 그 유명한 목신의 오후 사건 때 깔무뜨에 대항에 니진스키를 옹호하기도 했다지. 그를 모델로 조각상을 만들려고 스케치도 하고 이렇게 준비를 착착 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 사이를 질투한 -_-;;; 디아길레프의 방해로 결국 이렇게 습작만 남았다.
포즈들을 보면 대부분 목신의 오후의 동작을 스케치한 것 같다. 하긴 지금 이 시대에도 마지막 동작은 조금은 거시기한데 1900년대 초반에는 다들 기절할 만도 했겠지. 그리고 로댕은... 그 므훗한 광경에 흐뭇해하며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ㅎㅎ
가만 보면 질투는 남자들이 더 심한 것 같다. 로댕이 이사도라 덩컨을 모델로 조각상을 만들려고 했을 때도 당시 그녀의 동거남의 질투와 방해 때문에 무산됐다고 하던데... 덩컨도 대차보이는 행동과 달리 사생활은 남자에게 많이 좌지우지 됐던 모양. 나 같으면 옆에서 지x염x을 떨거나 말거나 모델 했을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댕 아닌가.하긴 결정적으로... 로댕이 내 조각상을 만들겠다고 나설 리가 없다는 딜레마가 존재. ^^;;;
여하튼 두 남자의 쓸모없는 질투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인 걸작 두개를 빼앗겼다. ㅠ.ㅠ
2003년 사진 끝~ 이렇게 두달에 거쳐 올리고 보니... 태국에서 찍어온 그 엄청난 사진들이 사라진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ㅎㅎ;;;; 아마 여행 포스팅만 몇달은 더 해야했을듯. 그래도 비 맞으면서 몇시간동안 걸어 올라간 고산족 마을에서 찍은 사진들은 쬐끔은 아깝다. 거긴 같은 류의 촬영이 없는 한 두번 다시 갈 일이 없을 텐데. 간다손 쳐도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힘들듯...
이곳은 찾아가긴 쉬운데 그 전철을 통해 빠져나가긴 참 묘하게 어렵다.
나도 헤매고 있는데 나한테 길을 묻는 프랑스 여자는 또 무슨 심산인지. ^^;;;;;
달력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봐서 사실 제일 재밌긴 했다.
일정이 짧다면 루브르보다는 오르세를 택하는게 나은 것 같다.
무슨 역을 리모델링 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남. 겉으로 보기엔 별반 넓어보이지도 않지만 들어가면 꽤나 넓다. 시계탑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레스토랑이 기억이 나는데 먹느라 정작 사진은 못찍었음. ㅎㅎ;
1층 로비. 공간 활용을 참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음. 이날도 컨디션은 꽝. 그래도 본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악을 쓰고 다녔다.
3층에서
누군가의 부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_-;;; 이름값보다는 예뻐서 찍었다. 서양을 무대로 한 로설의 주인공 같은 미모. 초상화는 실물보다 예쁘게 그리는 게 유행이었다던데... 실물이 이것보다 더 못할까? 그랬으면 좋겠음. ㅎㅎ;
밀레의 유명한 그림들. 달력 그림을 실제로 보니 내가 정말로 파리에 왔구나 실감. ㅎㅎ
마네의 올랭피아. 그때는 그냥 올랭피아라는 것에 혹해서 찍었는데 최근에 읽은 책 덕분에 그림이 달리 보인다. 오르세에 한번 더 가줄까? 고민...
고갱의 그림들. 솔직히 고갱 컬렉션은 오르세보다 보스턴 뮤지엄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한데... 그것도 오래된 기억이라 보장은 못함. 고갱은 확신하지 못해도 인상파 컬렉션은 파리를 제외하고는 보스턴 뮤지엄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수요일은 무료니까 보스턴 갈 사람은 꼭 들러보면 좋을듯. 샛길로 샜구나. ㅎㅎ
누구 그림인지 알았는데... 누구더라?
르느와르의 그림. 역시나 내 방 달력에 있던 그림이라 무척 익숙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내 달력 사이즈보다 작아서 조금 놀랐음. ^^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그림들이 작아졌다고 하는 얘기를 말만 듣다가 이 그림을 보니 실감했음.
고갱과 싸운 고흐가 자기 귀를 잘라 창녀에게 보내고 그린 자화상이라는데... 좀 성깔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긴 하다. 크지 않은 그림임에도 붓터치가 착시 효과를 일으킬 정도로 강렬했던 인상만 남아 있음.
이 방을 그린 그림이 여러장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것. 많은 설명과 해석을 읽고 들었지만 그래도 특별히 강한 인상은 갖지 않았던 기억이 남. 이번에 가서 보면 또 다를까? 그런데 오르세에 갈 시간이 될지... 근교 고성 투어를 안가면 오르세에 들르고 고성 투어를 가면 포기.
고흐의 그림들이다. 이 그림은 미술책에도 있어서 시험에도 나왔던 기억이 남. 그런데... 시험에 나왔던 기억은 나는데 정작 중요한 그 답은 생각이 안 남. ㅋㅋ
다음날 로댕 미술관.
이날 본래 계획은 오전엔 로댕 갤러리, 오후에는 들라크루와 갤러리에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정신력으로 버티던 컨디션이 드디어 바닥에 도달한 고로 만사 포기하고 로댕 갤러리에서 호텔로 돌아가 내리 잤다.
아까운 내 반나절. ㅠ.ㅠ
로댕이 살던 집을 죽고 나서 미술관으로 꾸몄다는데 담장의 길이만 해도 엄청나다. 입구를 찾아 헤매며 찍은 사진. ^^
로댕 갤러리 외경과 저 바깥에 걸린 금색 둥근 지붕은... 샤이오 궁 아니면 앙발리드 군사 박물관인듯. 어느 것인지는 정확히 모름.
정원에 있는 나무. 왜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무의 위치와 각도가 내가 좋아하던 그림과 닮았던 것 때문이 아닐까 지금 그냥 지레짐작.
정원 끝에 있는 야외 극장에서 바라본 저택 정면. 집이 정말로 으리으리. 저런 집에서 살았던 걸 보면 로댕이 정말로 성공한 예술가이긴 한 모양이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정도면 예술도 할만 하지.... 라는 생각을 피카소와 로댕 미술관에서 했음.
정원에 있던 조각상 중 하나. 유명한 칼레 시민 6명으로 기억이 됨. 원본인지 복제본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원본이라고 믿고 싶음.
천국의 문. ^^ 역시 정원에 있었다. 정원의 조각들만으로도 호화스런 눈요기거리임. 정원만 볼 수 있는 티켓도 따로 판다고 한다. 그건 싸다고 함. 그러나 역시 안에 액기스가 모여있음.
로댕 미술관 안에서 찍은 사진들~
파리에서 마지막 날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이번엔 감기약 등등을 다 챙겨놨음. ㅎㅎ
컨디션 이상하면 초반에 약으로 다 잡고 꼼꼼하게 즐기다 올거다~
하나는 로댕, 하나는 까미유 끌로델의 키스라는데 어느 게 어느 건지 모르겠음.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아니 좀 더 냉정히 얘기하면 성별을 잘못 갖고 태어나 스러진 천재에 대한 씁쓸한 느낌으로 작품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펄벅의 자랑스러운 여인이란 소설을 떠올렸다. 그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펄벅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끌로델을 연상시키는 -물리적인 배경은 엄청 다르지만 재능과 정서적 부분에서 닮은 점이 많다- 여주인공을 행복하게 살려낸 것이 아닐까.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 펄벅이 까미유 끌로델이란 존재를 알았는지 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일단 끌로델이 세상에 다시 빛을 보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니... 아니라고 해도 여하튼 끌로델과 펄벅의 소설... 내가 볼 때는 재미있는 우연이다.
역시 까미유 끌로델이 모델이었다는 것 같은데... 확실치 않음. 재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정말 거장들만의 특권인 것 같다.
니진스키를 모델로 만든 일종의 스케치라고 해야하나... 본격적인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주물럭거려놓은 습작들. 니진스키가 파리에 화려하게 등장했을 때 로댕 역시 그에게 매혹된다. 그 유명한 목신의 오후 사건 때 깔무뜨에 대항에 니진스키를 옹호하기도 했다지. 그를 모델로 조각상을 만들려고 스케치도 하고 이렇게 준비를 착착 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 사이를 질투한 -_-;;; 디아길레프의 방해로 결국 이렇게 습작만 남았다.
포즈들을 보면 대부분 목신의 오후의 동작을 스케치한 것 같다. 하긴 지금 이 시대에도 마지막 동작은 조금은 거시기한데 1900년대 초반에는 다들 기절할 만도 했겠지. 그리고 로댕은... 그 므훗한 광경에 흐뭇해하며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ㅎㅎ
가만 보면 질투는 남자들이 더 심한 것 같다. 로댕이 이사도라 덩컨을 모델로 조각상을 만들려고 했을 때도 당시 그녀의 동거남의 질투와 방해 때문에 무산됐다고 하던데... 덩컨도 대차보이는 행동과 달리 사생활은 남자에게 많이 좌지우지 됐던 모양. 나 같으면 옆에서 지x염x을 떨거나 말거나 모델 했을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댕 아닌가.
여하튼 두 남자의 쓸모없는 질투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인 걸작 두개를 빼앗겼다. ㅠ.ㅠ
2003년 사진 끝~ 이렇게 두달에 거쳐 올리고 보니... 태국에서 찍어온 그 엄청난 사진들이 사라진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ㅎㅎ;;;; 아마 여행 포스팅만 몇달은 더 해야했을듯. 그래도 비 맞으면서 몇시간동안 걸어 올라간 고산족 마을에서 찍은 사진들은 쬐끔은 아깝다. 거긴 같은 류의 촬영이 없는 한 두번 다시 갈 일이 없을 텐데. 간다손 쳐도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힘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