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아당
안무: 마츠 에크
무대&의상: 마리 루이즈 에크만
세계초연: 1982. 쿨버그 발레
한국 초연: 2010년 10월 22일 대구 문화예술회관. 프랑스
고전 재해석의 대가 스웨덴 안무가 마츠 에크는 고전을 그대로 보면 사람들의 상상력을 가두게 된다. 고전을 언제까지나 신선한 상태로 남겨두려면 새롭게 재해석하는 방법뿐’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생각에서 그는 고전발레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대머리 백조와 나약한 왕자가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1987), 카르멘(1992)에선 담배를 피우는 자유분방한 카르멘과 카센터 직원인 호세, 요염한 십 대 마약 중독자인 오로라 공주가 주인공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1996), 등으로 새롭게 창조했다.
그의 파격적인 고전 재해석의 시작은 1982년 지젤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쿨베리 발레단의 안무가였던 그는 원작의 순수한 소녀가 아니라 세속적이고 멍청한(?) 지젤을 창조했다. 그의 지젤은 사랑에 배신당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바보로 베레모를 쓰고 맨발로 춤을 추는 등 예쁜 발레리나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현대적인 소녀로 등장하고, 배신당하자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2막이 펼쳐진다.
1막에서 힐라리온은 지젤의 약혼자로, 알브레히트는 놀기 좋아하고 무력한 상류층 플레이보이로 등장한다. 그리고 2막에서 나타나는 초월적 이미지는 유령과 묘지가 아니라 미쳐버린 지젤과 배반당한 다른 처녀들이 갇혀있는 정신병자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다.
전체적인 플롯과 스토리의 뼈대, 음악은 고전발레 지젤과 같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면면은 원작을 교묘하게 비틀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1막
독일의 시골 마을이 아니라 열대 화산섬의 한 마을.
베레모를 쓴 맨발의 지젤은 허리에 밧줄을 감고 등장한다. 지젤은 고전 발레와 달리 아름다운 시골 처녀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순박한 백치이다. 그녀의 약혼자 힐라리온은 지젤을 사랑하지만 교활하고 집착이 강하며 그녀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저 지젤을 밧줄에 묶어 통제하려 들 뿐이다. 이 무대에 쾌락을 즐기는 젊은 도시 귀족인 알브레히트와 그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아름답고 순수한 1막의 지젤을 무겁고 현실적으로 바꾼 것처럼 마을의 분위기나 등장인물도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대신 뭔가 끈적하고 천박하게 변형되고 있다. '패전트 파드 되'에선 원작의 축제 분위기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는 소작농들의 무례하고 서투르며 무거운 몸짓이, 지젤이 사는 마을은 야만스러운 물질성을 강조한 서민들의 공간이다. 그리고 알브레히트의 도시는 무력한 곳으로 묘사된다.
알브레히트는 순진하고 어린아이 같은 지젤에게 동정을 느끼는 동시에 매력도 함께 느낀다. 도시청년에게 매혹된 지젤은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되지만 그 열정은 약혼녀의 존재를 알게 되자 집착과 스토킹으로 바뀐다. 알브레히트는 그녀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멀리하려고 한다. 계속 피하는 알브레히트를 쫓아다니던 지젤은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2막
미친 지젤은 정신병동에 수용된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그녀 주변엔 흰색 환자복을 입고 병동 침대의 흰색 시트에 몸을 숨긴 정신병동 환자들이 등장해 정신병자 특유의 기괴한 행동들을 반복한다. 고전발레에서 윌리들의 리더인 미르타는 여기서 정신병원의 수간호사로 등장한다. 하얀 환자복을 입은 광기 어린 지젤이 빚어내는 각양각색의 파장에선 현대의 옷만 바꿔 입은 원작의 아우라가 그대로 느껴진다.
늦은 밤 정신병원에 찾아온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사랑한다기보다는 동정이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광기로 가득찬 병원에서 그와 재회한 지젤은 그를 용서하고 알브레히트는 가벼운 바람둥이에서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정신병원에서 밤을 보낸 알브레히트가 다음날 태아처럼 벌거벗은 채로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그리고 마츠 애크는 여기에 힐라리온의 용서를 더 한다. 질투의 화신으로 거칠고 공격적이었던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에게 덮을 것을 가져다주면서 발레는 막을 내린다.
이 발레는 인간 존재의 원시적 순수성의 회복에 대한 에크의 독특한 해석이 빛나는 부분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또 원작의 낭만성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보다 현실적인 느낌을 갖게 된 것도 흥미로운 설정이다.
현재 마크 에츠의 지젤은 쿨베리 발레단과 함께 프랑스 리옹 국립 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공연도고 있다.
MENT
설명 불가능. ^^ 그냥 보면 압니다. 지젤을 보고 쇼크 먹기는 처음이었다는 것만 말씀드리죠. 마츠 에크의 작품은 발상이 너무 엄청나게 뻗어나가 버려서 저 같은 고전 복고(반동. ^^) 주의자에겐 늘 충격이 강하더군요. 한번에 삼키기에 덩어리가 버거워 그렇지 기본적으로 아이디어가 많고 정리를 잘 해서 전달하는 안무가입니다.
작년에 왔을 때 꼭 보고 싶었지만 제일 바쁜 4/4분기인데다가 키로프랑 겹쳐서... 일산과 성남을 오가기엔 이젠 체력이 딸리네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