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빌몽블(Villemomble) 출생의 무용가이자 안무가 태생. 무용수, 안무가.
롤랑 프티는 1933년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다가 1940년에 코르 드 발레로 입단한다. 1943년 솔리스트 승급했지만 20살에 안무에 전념하기 위해 발레단을 나와 초기 작품들을 안무하다가 1945년에 샹젤리제 발레단을 만든다. (主: 샹젤리제 발레단에 들어갔다는 기록도 있다. 확인이 필요한 내용임)
샹젤리제 발레단에서는 수석 무용수이자 발레 마스터, 안무가로 1947년까지 활동했다. 이 시기 ‘유랑 연예인’ ‘랑데부’ ‘젊은이와 죽음’ 등 실존주의적 색채가 강한 작품을 안무해 상연하였다. 특히 1946년에 발표한 《젊은이와 죽음》은 전방위 예술가 장 콕토가 대본을 쓴 롤랑 프티의 두 번째 작품으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을 맡은 영화 ‘백야’로도 잘 알려진 발레이다.
1948년에는 롤랑 프티 파리 발레단을 설립해 유럽과 미국으로 순회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밤의 숙녀들’ ’카르멘’ ‘다이아몬드를 깨무는 여자’ 등을 선보이고, 1953년 재조직 후에는 ‘이리’ ‘24시간의 상(喪)’ 등을 공연하며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발레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54년에는 역시 국립 파리오페라 발레단 무용수였고 그가 안무한 카르멘의 주연을 맡았던 지지 장메르(Zizi Jeanmaire)와 결혼하여 그녀를 주역으로 한 작품들에 정열을 쏟았다.
롤랑 프티의 ‘카르멘’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자 선정적이었던 의상과 안무, 도발적인 헤어스타일 등의 이유로 엄청난 반향을 몰고 온 작품이다. 본래 롤랑 프티는 다른 발레리나를 염두에 두고 카르멘을 안무했지만 만약 그 역할을 주지 않으면 발레단을 그만 두겠다는 지지 장메르의 협박에 하는 수 없이 카르멘을 그녀에게 맡겼고 공연 직전까지도 그녀의 역랑을 믿지 못해 엄청 안절부절 했다고 한다.
안무작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런던과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영화에도 손을 뻗쳐 안데르센의 동화 유리구두, 키다리 아저씨, Anything Goes와 같은 영화의 안무도 했다. 특히 발레 영화인 ‘검은 타이츠’는 프티의 발레들로 구성되어 있다. (La Croqueuse de diamants, Cyrano de Bergerac, A Merry Mourning, Carmen)
파리에 돌아와 미국식 뮤지컬 형식을 프랑스 발레에 결합시키는 작품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새들러즈 웰즈 발레와 로얄 데니쉬 발레를 비롯한 많은 발레단을 위한 작품을 안무했다. 1969년부터(1970년이라는 설도 있음) 75년까지 그는 카지노 드 파리를 운영했다.
로열발레단의 누레예프와 폰테인을 위해 안무하기도 했고, 라스칼라 극장은 물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위해 다양한 안무를 했다. 1970년 국립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짧은 기간 재임하다 1973년 (1972년 설도 있음) ‘핑크 플로이드 발레’로 마르세이유 발레단의 예술 감독이 되어 프랑스 국립 마르세이유 롤랑 프티 발레단을 26년간 예술감독으로 이끌었다.
이 시기에 안무한 발레는 누레예프와 마고트 폰테인 커플을 위해 안무한 ‘실낙원’(1967) ‘투랑가릴라’(1968) ‘노트르 담 드 파리(노틀담의 꼽추)’ (1965) 있다. 1975년 코펠리아를 현대적으로 안무하고 1980년 파리 오페라 발레를 위해 새로 ‘오페라의 유령’을 안무한다.
그는 종종 곡예사나 서커스를 대상으로 한 발레를 안무했고 이때 마임 댄스와 노래, 시가나 전화 같은 소품을 즐겨 활용했다. 그의 특징은 클래식 발레의 형식과 기법의 과시와 같은 벽을 허물고 프랑스인 특유의 정신을 구사하여 독자적인 모던 발레 세계를 전개하였다.
디아길레프 발레단 해산 후의 유럽의 정신을 계승한 발레 후계자로 평가 받고 있다.
MENT:
어릴 때 ‘박쥐’로 만난 이후부터 오랫동안 좋아한 안무가 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특히나 의상이며 장치가 화려하고 얘기가 펼쳐지는 발레를 좋아했는데 박쥐는 그런 면에서 취향에 딱 맞았죠.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맞는지 모르겠지만, 얼굴에 콧수염을 달았던 것이 용서될 정도로 주인공 남자 무용수가 매력 있었던 것도 같고. ^^
그의 작품들은 정말 프랑스적이다! 라는 찬탄이 나오는 화려한 색감의 구성이죠. 음악성이 뛰어난 안무가 리스트는 길게 댈 수 있어도 이 사람이 정말 미술적인 감각이 있구나 하는 사람을 대라면 롤랑 프티를 빼고는 아마 다음 이름이 나오기 힘들 정도로 그의 색감이며 장식에 관한 안목은 정말 뛰어납니다. 춤과 함께 항상 강렬한 색채가 기억에 남는 것이 제게 있어서 롤랑 프티 발레의 특징이죠.
일찍부터 독립해 발레단을 꾸려서 그런지 장사에 머리가 팽팽 돌아가 일찍부터 영상물을 많이 만들어 팔았기 롤랑 프티의 작품들은 만나기 쉽습니다. 카르멘이며 파리의 노트르담 같이 누구나 다 아는 대표작도 좋지만 제가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작품은 그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입니다. 이렇게 프랑스적이고 색깔 화려하고 또 카라보스(아내 지지 장메르가 이 역할을 맡았습니다)가 중요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아마 다시 없을 듯. 마츠 애크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함께 수준 있는 파격이라는 의미에선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품이죠. 에츠는 너무나 쇼킹이라 사실 이쯤이 딱 제 취향. ^^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춤도 춤이지만 춤 외의 볼거리도 튀지 않게 너무나 잘 박아넣어서 구경거리가 많은 작품을 잘 만듭니다. 저 아래 그의 연대기가 있으니까 관심이 있으신 분은 그걸 보시길.
작품 연보
※ POB : "옆에 나온 숫자 연도부터 파리 오페라 발레의 레퍼토리가 된 작품
Les Forains (1945) # POB 1993
Le Rendez-vous (1945) # POB 1992
Le Jeune homme et la mort (1946) # POB 1990
Les demoiselles de la nuit (1948)
Carmen (1949) # POB 1949
L'Oeuf a la coque (1949)
Ballabile (1950)
La croqueuse de diamants (1950)
Le Loup (1953) # POB 1975
Deuil en 24 heures (1953)
La Chambre (1955)
Cyrano (1959)
Les Chants de Maldoror (1962)
Notre-Dame de Paris (1965) for the POB
Adage et Variations (1965) for the POB
Eloge de la Folie (1966)
Paradis perdu (1967)
Turangal?a (1968) for the POB
Kraanerg (1969)
Allumez les etoiles (1972)
La Rose Malade (1973)
Les Intermittences du coeur- Proust remembered (1974)
L'Arlesienne (1974)
Scheherazade (1974) for the POB
La Symphonie Fantastique (1975) for the POB
Septentrion (1975)
La Nuit transfiguree (1976) for the POB
Nana (1976) for the POB
Mouvances (1976) for the POB
Casse-Noisette (1976)
La Dame de Pique (1978)
La Chauve-Souris (1979)
Parisiana 25 (1979)
Le Fantome de l'Opera (1980) for the POB
6 danses de Chabrier (1981)
Les Hauts de Hurlevent (1982)
Les 4 Saisons (1984)
Le Chat Botte (1985)
Ma Pavlova (1986)
Tout Satie (1988)
Le Diable Amoureux (1989)
La Belle au Bois Dormant (1990)
Charlot danse avec nous (1991)
Dix oder Eros und Tod (1993)
Camera obscura, Passacaille, Rythme de Valses (1994) for the POB
Le Guepard (1995)
Clavigo (1999)